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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#오르산미켈레 제대화 #스트로치 제대화
1347년 유럽을 덮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으며 삶의 모습까지 바꿔놓았다. 그러나 한편 줄어든 인구는 집값 하락과 임금 상승을 불러와 미술이 대중화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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흑사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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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1347년 Black Death
- 당시 도시는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구가 증가해 위생상태 취약
- 피해가 걷잡을 수 없어짐. 치사율이 90-95퍼센트에 이름, 발병 2-3일 내로 사망
- 인구의 절반이 죽음
👀 유럽의 인구변화, 사회변화
- 1000-1700년 유럽의 인구변화
- 유럽인들의 정신세계에 뿌리 깊은 상처
- 죽음이 삶에 가까이 있다보니 종교에 깊게 몰두하거나 회의론자들이 생겨남
- 쾌락주의자, 냉소주의자, 합리적 이성주의(의학발전) 등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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흑사병이 미술에 끼친 영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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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병을 치유하는 성모자상: 오르산미켈레
- 오르산미켈레 성모자상이 병이 치유하는 기적을 발휘한다는 소문에 사람들 몰려듦
- 원래 곡식창고였다가 길드회의실로 사용되던 곳이 성당으로 바뀜
- 봉헌한 예물과 기부금은 피렌체 정부 1년 예산보다 많을 정도
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예배당
- 교리에 대한 확신과 신비로운 영성을 앞세운 도미니크 수도회가 인기를 얻음
-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이 수도회를 대표하는 성당

- 특히 스트로치 예배당은 당시 미술의 변화를 드러냄
👀 과거로 후퇴한 그림: 스트로치예배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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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미술의 대중화

- 인구가 줄면서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짐
-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의 미술수요가 증가
- 미술품 가격이 하락하며 미술이 대중화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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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렌체의 위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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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촘피의 난
- 하급노동자(양모를 손질하는 기술자)
- 자체적인 길드를 가질 수 없어 정치적 권리가 없었음
-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반란, 노동자 혁명

👀 14세기 피렌체의 위기상황

- 1380년대부터 밀라노 피렌체 공격 시작
- 1400년대에 이르러 혼란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도시 재생 사업을 벌임
- 프로젝트 결과물이 바로 르네상스가 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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