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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#힐데스하임 수도원 #오토 3세의 필사화 #슈파이어 대성당
중세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순례가 유행한 시기였고, 동시에 유럽 세계와 정치 사회가 기틀을 닦은 시기였다. 중세 유럽의 권력을 양분한 황제와 교황은 각각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. 그 과정은 중세 건축과 미술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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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세 대성당 건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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👀 교회의 다양한 이름
교회 |
일반적인 기독교 성전을 일컬음 |
성당 |
앞에 고유명사를 붙여 특저한 교회를 가리킴 |
대성당 |
고위 성직자인 주교가 자리한 지역의 성당 |
|
(참고) 캐시드럴, 카테드랄, 두오모, 돔 |
→ 대성당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, 식당 및 숙박업소도 대성당을 중심으로
→ 일반적 행정조직
👀 수도원
- 모나스트리 monastery, 애비 abbey, 민스터 minster 등으로 불리움
- 수도원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
- 수도원장이 주교에 뒤지지 않는 권위를 지니기도
→ 특수 조직, 성당보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더 잘 반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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힐데스하임 대성당과 성 미카엘 수도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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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중세판 계획도시, 힐데스하임
- 독일의 대표적 중세도시, 1000년대 초에 틀을 갖춤
- 이 지역 관할 주교 베른바르트의 건축계획 주도
- 샤를마뉴 다음의 황제, 오토가문의 스승역할
- 하늘에서 내려다 본 힐데스하임
👀 힐데스하임 대성당
- 2차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90퍼센트 이상 파괴, 1950년대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
- 전통을 충실히 따른 힐데스하임 대성당
- 바실리카 양식 교회와 거의 일치
👀 성 미카엘 수도원
-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 반영
- 성미카엘 수도원 평면도
- 서쪽 제단의 크기 커진 이유
- 황제의 권력이 커졌다는 의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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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토 3세의 필사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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👀 오토3세
- 자신의 사촌 그레고리우스5세(최초 독일인 교황)를 교황자리에 앉힘
- 황제의 관은 하늘에서 직접 내려오는 것으로 표현한 필사화
- 권력의 빈곤함을 가리기 위한 과장된 표현(과시욕)
- 라우타르, 라우타르의 전례용 복음서, 1000년경, 아헨 대성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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베른 바르트의 청동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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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성미카엘 수도원의 문
- 베른바르트 주교의 지시로 제작되어 ‘베른바르트 청동문’으로 불림
- 압도적 크기: 높이 4.7미터, 너비 각각 1.2미터, 무게가 각 1.8톤
👀 베른바르트 청동문 조각 세부
- 아담과 이브
- 중세 시기 인간의 신체에 대한 접근 방식은 그리스 로마 시대와 완전히 다름
- 중세에 인간의 몸은 죄의 근원
- 사실적 표현보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씀
- 단순하면서도 치밀하고 꼼꼼하고 단계적으로 표현
- 쉽고, 명쾌하게!
- 비례나 형태가 어색하고 만화같이 보일지라도
- 내용전달 면에서 매우 강력한 힘이 넘침
👀 중세 미술의 가장 큰 특징(목적)
- 신앙심의 표현
-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교훈적인 메세지 전달
- 말씀을 거역한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인데, 아담과 이브의 몸이 아름다울 필요가 있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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슈파이어 대성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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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하인리히 4세

👀 슈파이어 대성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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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기 1030년~1061년 , 2기 1090년~1106년 증축
-
천장의 변화(높이 23미터→33미터)

-
평평한 나무를 뜯어내고 아치형 석조 천장으로 바꿈
-
황제의 권위와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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황제와 교황의 권력다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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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카노사의 굴욕
- 주교 임명권(서임권)을 놓고 벌인 교황과 황제의 싸움
- 1076년 교황 그레고리 7세, 하인리히 4세 파문과 폐위를 선언
- 교황에게 사죄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로 감
- 맨발로 3일동안 눈밭에서 용서를 빈 끝에 하인리히 4세 사면→교황권의 정점
👀 황제의 복수

- 4년 뒤 자신에게 굴욕을 준 교황을 파면한 후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 감
- 자신의 손으로 클레멘트 3세를 새 교황으로 세움
- 황제와 교황이 치고받던 시기에 천장 높이를 증축시킨 하인리히 4세
- 교황에 대한 경쟁심 발동
- 교황의 적극적 후원으로 거대한 클리뉘 수도원 지음(높이 30미터)
- 베드로대성당 재건되기 가톨릭 세계에서 전까지 가장 큰 건축물
- 프랑스 혁명당시 비리의 온상이었던 수도회 공격당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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