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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#궁정미술 #태피스트리 #부르고뉴 공국 #샹몰 수도원 #베리 공의 기도서
백년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프랑스와 영국은 여전히 호화로운 궁정미술을 이어갔다. 당시 플랑드르가 속했던 부르고뉴 공국에서도 화려한 궁정 미술이 펼쳐졌는데, 여기서 앞으로 플랑드르 미술이 보여줄 사실성의 전조를 엿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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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년전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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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다른 지역에서는 왜 르네상스가 늦었나요?
- 14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벌임
- 백년 전쟁의 경과
- 이는 플랑드르에 대한 주도권을 서로 쥐려고 하다가 일어난 전쟁이기도 함
- 백년전쟁으로 인해 플랑드르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발전
- 스페인도 이슬람 세력과 전쟁중
👀 전쟁 중에도 호화롭고 화려한 미술
- 프랑스, 영국 미술의 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음
- 예) 프랑스 황실의 황금 말, 1405년
- 예) 영국 왕실의 월튼 두폭화, 1395-1399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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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피스트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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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움직이는 벽화 (노마드를 위한)
- 궁정의 호화로움 상징, 이 시기 최고의 미술
- 제작공정이 까다롭고 상당한 노동력을 요하는 당시 최고의 미술
- 걸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라 부와 권위 상징이기도 함
- 타피스트리 만드는 제작과정
👀 어디서든 걸 수 있는 벽화!
- 화사한 공간 연출, 냉기 잡아주는 역할
- 왕족이나 귀족, 교회의 주문으로 제작, 성이나 성당에 걸림
- 워낙 크기 때문에 벽에 걸 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의 상징
- (그림) 장 르 타베르니에, 미사를 드리는 선량공 필라프
- 묵시록 태피스트리, 1377~1382년
- 여인과 유니콘 태피스트리, 1500년 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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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르고뉴 공국의 미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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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
- 플랑드르를 다스리던 플랑드르 백작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계승권이 사위였던 부르고뉴 공작에게 넘어감
- 15세기 플랑드르의 상업 부흥은 부르고뉴의 궁정문화를 발전시켰으며
- 플랑드르 지역에 있던 부유한 무역항을 지배: 세금, 사치품 차지
- 1477년 부르고뉴 공국
- 이는 앞으로 펼쳐질 북유럽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침
- 부르고뉴 공국의 역사(1363~1482)는 120년으로 짧지만 미술사에 큰 자취
👀 디종 샹몰 수도원
<클라우스 슬뤼터르의 조각>
<모세의 우물>
- 정원 안에 자리한 모세의 우물
- 멋진 조각 잔뜩 들어간 우물
- 비교) 도나텔로, 성 마르코, 1411-1416년
- 앞으로 북유럽에서 나타날 사실적인 미술에 대한 전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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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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💡 👀 베리공
- 부르고뉴 1대공작 필리프의 친형
- 플랑드르 출신화가 “랭부르형제”에게 기도서 제작 맡김
- “랭부르형제” 3형제, 부르고뉴 궁정에서 일하다 필리프 사망 후 베리공 궁정에서 일함
👀 베리 공의 기도서: 채색필사본
- 성무일도서: 매일 해야하는 종교 일과를 묶은 기도서
- 기도문+생활상 담은 삽화 (사시사철 생활상)
- 옷차림, 장식품 등에서 사실성이 두드러짐
- 홀수달은 주로 상류층, 짝수달은 하칭민의 삶
-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갈등을 암시하는 등 당대 사회를 반영함
-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함, 412쪽의 방대한 양, 독피지(송아지가죽, 50-70마리 희생)
- 실제와 상징을 교묘히
- 하층민은 왜 게으른 모습으로?
- 하층민에 대한 불편한 심기
👀 시민사회의 등장
- 농민전쟁: 백년전쟁, 흑사병: 몸값이 올라간 농노들, 권리를 찾기 위한 저항
- 농노들은 평생 땅에 속박되어 노동의 삶을 보내야하는데
-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도시로 도망가 자유인이 됨
- 영주들의 묵인: 노동력보다 도시로부터 얻는 세금으로 더 많은 이익
- 도시의 힘이 영주보다 커짐: 시민사회 탄생과 이어지며, 자본주의와도 연결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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