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aside> 💡 #프란체스코 성인 #탁발 수도회 #아시시
11,12세기경 도시가 성장하며 여러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자 청빈을 앞세우며 등장한 프란체스코 성인은 모든 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강론을 펼쳤다. 프란체스코 성당은 이러한 성인의 가르침을 담아낸 공간이었으며, 성당 벽면을 채운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강론과 함께 더욱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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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aside> 💡 👀 위치
👀 배경
👀 탁발 수도회
<aside> 💡 👀 그림으로 남은 성인의 일대기
신도석을 따라 좌우 양쪽으로 14개씩, 총 28장면으로 이루어졌으며 조토가 그려졌다고 알려짐
그러나 세부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많이 보이므로 조토가 전부를 그리지는 않을 가능성 있음
실제로 아시시에서 벌어진 것처럼 그려짐, 실제건물
👀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대기 벽화(104~105쪽)
<aside> 💡 👀 대중에 대한 배려
당시 교회에는 이미 기득권이었기 때문에 굳이 대중에게 신의 말을 설파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음
프란체스코 수도회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중강론을 펼침(모두를 위한)
성인의 일대기를 담은 벽화들이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큰 힘을 발휘함
미술의 발전에도 큰 영향